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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짐 센서

사색/짧은 생각

by Aesthetic Thinker 2020. 2. 1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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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줍음을 타고났다.

더 리얼 'SHY BOY'다.

 

MBTI 성격검사는 내향형,

애착유형검사는 회피형.

 

심지어는 애착유형검사가 조건인 한 모임에서

회피형이 나오면 싫어할까봐

조금 좋게 답했는데

어김없이 회피형이 나와 조금 놀랐다.

 

초면인 분들이 많은 모임에 나가면

말을 아끼는 편이다.

 

내게 익숙한 것은 조용히 앉아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이따금 크지 않은 반응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재미있나?

재미없다.

 

자기 생각도 말하면서

서로 티키타카해야 대화가 즐거운 법이다.

그러나 나는 늘 그런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왜 그렇지?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할 말이 있으면서도 말을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도대체 왜?

 

나는 피자를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말이 있다.

"친해지면 안 그래"

"낯을 좀 가려서"

 

나 또한 그렇다.

위 말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결국 낯가림에 있다.

 

그러나 낯가림이라고 하면 조금 추상적이다.

내 경험에 빗대어

낯가림의 증상을 물리적으로 표현해보겠다.

 

'친분이 적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쏠리면 얼굴이 빨개진다'

 

이건 마치 공식처럼 작용한다.

이것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긴장을 해서 얼굴이 빨개진건지,

얼굴이 빨개져서 긴장했다고 느끼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몸에 내장된 센서가

조건을 만족하면 저절로 실행하는

하나의 프로그램같다.

 

이제는 이 현상에 적응이 되어서

얼굴이 빨개지는게 느껴져도

어쩔수 없는 생리현상이라 생각하고

그냥 하던 것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런 나의 멘탈을 가장 흔들리게 하는 말이 있다.

'너 얼굴 빨개졌어'

이런 말이 나오면

나는 단번에 그 자리에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그 이후부터는

그럴 필요 없는데 사람들이 나를 뭔가 챙겨주는 게 느껴진다.

 

나는 그런게 정말 싫다.

그냥 평범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캐릭터가 수줍음이 많은 사람으로 잡혀서

수동적인 역할이 되어버린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도

'애써 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차라리 '원래 조용한 사람'을 택한다.

그렇게 모임에서 내 색깔은 점점 옅어지고

모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구색만 맞추다가

집에가서 자기연민을 반복하는 것이다.

 

'너 얼굴 빨개졌어'의 자매품으로는

'너도 말 좀 해봐'

'원래 조용한 성격인가봐요' 등이 있다.

 

이런 말들이 무언가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더 말이 없어지게 하는 마법의 말인 것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다.

나도 모임에서 내 색깔을 제대로 내고 즐기고 싶다.

 

사실 이제는 모임 나가기 전에

저런 말들을 들을 것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나가는 경지이다.

앞으로 더욱 멘탈을 강하게 해서

스스로 입을 닫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얼굴이 빨개지는 문제는 내가 가진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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