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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세계 서버

사색/자유분방한 사고

by Aesthetic Thinker 2019. 12. 4.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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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땅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

 

내가 보는 관점과 벌레가 보는 관점. 각자 그들만의 관점이 존재한다. 둘 다 이 광활한 세계의 플레이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2017년부터 2019년 초까지 즐겼던 게임 배틀그라운드(소위 배그). 배그는 나에게 여러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이 바닥을 기는 벌레로부터 떠오른 생각이다. 플레이어라는 생각을 하니 배그에서 한 판에 참여하는 100명의 플레이어가 떠올랐다. 그 넓은 맵에서 이 대규모 플레이어들의 수많은 상호작용을 서버 한 대(물론 여러 대일 것이지만, 단위적으로는)에서 실시간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친구와 밤새 배그를 즐기다가 아침에 맥모닝을 먹고 돌아가는게 일상인 적도 있었다.

배그 서버가 한 판의 배그를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100대의 플레이어 컴퓨터와 통신하며 플레이어의 행동과 그에 의한 게임세계의 영향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여기서 게임세계를 현실의 물리적 세계, 플레이어를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대응시켜 보았다. 그렇다면 현실의 생명체에 의해 발생하는 자율적 행동이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주려면 우선 '물리 세계 서버'에 행동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 물리 세계 서버에서는 수신한 행동 정보를 적절히 처리하여 물리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꼭 생명체의 행동에 의해서만 물리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 세계에서는 시간이 계속 흐르고, 시간에 따라 물리 세계의 환경 스스로도 변화한다. 가령 지각 변동과 같은 일 말이다. 이러한 일들은 그저 물리 세계 서버 내부에서 수행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생명체는 물리 세계 서버와 통신하고, 그 외의 환경은 물리 세계 내부에서 수행된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생명체도 물리적 존재이므로, 환경처럼 물리 세계 내부에서도 충분히 수행될 수 있지 않은가? 배그로 돌아가 보자. 분명 총을 든 캐릭터를 조종하는 플레이어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그 플레이어의 행동이 배그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키보드와 마우스의 입력 정보를 배그 서버에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보급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맡은 비행기는 누군가가 플레이하지 않는다. 비행기는 그저 배그 서버에서 구동하는 환경일 뿐이다. 따라서 서버와의 통신은 없다. 결국 배그 세계에서 어떤 개체는 플레이어가 있는가 없는가, 즉 자율성을 가졌는가 가지지 않았는가에 따라 배그 서버와의 통신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는가가 결정된다.

 

이제 다시 우리가 사는 물리 세계에서 생각해보자. 만약 물리 세계를 관장하는 물리 서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과연 우리는 자율성을 가지고 물리 서버와 통신하는가? 아니면 그저 물리 서버 내에서 자율성 없이 동작하는가? 이 문제는 결국 자유의지이냐 결정론이냐의 문제로 환원된다. 만약 전자라면, 일단 우리의 몸은 물리 세계에 속하므로 물리 세계를 벗어나 우리의 몸을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존재해야 한다. 배그 세계 밖에서 캐릭터를 조종하는, 즉 PC방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 말이다. 사실 이 플레이어는 샤머니즘 신앙을 가졌던 우리의 먼 조상들로부터 생각된 것이었다. 바로 영혼이다.

 

생각할 당시에는 몰랐는데, 결정론인가 자유의지인가 하는 문제는 태고의 핫토픽이더라.

배그를 하던 PC방 김씨의 캐릭터가 차가 폭발해서 죽고 말았다. 그래도 김씨는 죽지 않는다.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남아있는 것과 같다. PC방 김씨가 배가 너무 아파 게임 도중 화장실에 갔다. 게임을 지켜보던 옆자리 박씨가 대신 김씨 자리에 앉아 게임을 이어간다. 영혼이 바뀐것과 같다. 다른 말로 귀신이 들렸다. 만약 박씨가 김씨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고 김씨의 캐릭터와는 굉장히 먼 곳에 박씨의 캐릭터가 있었다고 해도, 박씨는 김씨의 바로 옆자리였다. 물리 세계의 거리와 영혼 간의 거리는 상이한 것이다. 박씨가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 경우는 서로 다른 물리 세계 간에도 동일한 영혼이 옮겨다닐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 물리 세계의 자율성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 세계를 벗어난 영혼의 존재를 상정했다면, 영혼 세계의 자율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영혼 세계를 벗어난 제 2의 영혼의 존재를 또 다시 상정해야 하는가? 이렇게 되면 무한 퇴행에 빠지게 된다.

 

만약 우리가 그저 물리 서버 내부에서 동작하는 일부라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서버에 의해 결정된다. 영혼 따위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론은 허무주의로 인도할 뿐이다. 아니면 양자역학에서의 불확정성 이론처럼 서버 내부에서도 진정한 '랜덤'이 존재하여 영혼 없이도 우리의 행동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랜덤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는 것은 결국 결정론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자유의지가 랜덤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랜덤이 무언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랜덤의 정의와 모순이다. 결국 랜덤이 곧 자유의지여야 한다는 특이한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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